Holiday In Sydney
홀리데이 인 시드니 프로젝트는 사진 생활을 돌아보며 찍는 쉼표다. 2019년 8월 16일부터 19일까지의 4일이 이미지로 남겨졌다. 그 뒤엔 찍고, 읽고, 쓰고, 생각해온 것들이 응축되어 있다. 모든 사진은 하나의 주제에 속한다. 그것은 정제된 아름다움이다. 보는 이에게 잘 구성된 사진은 즐거움을 제공한다. 쾌락을 통해 우리 사회를 지배한 자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답습한다. 21세기의 여행 양식을 따라 수동적으로 셔터를 누른다. 프레임에 담긴 이미지는 하염없이 찬란하다. 의도적 종속, 과잉 종속을 통해 아름다움의 이면으로 진입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작가 노트(텍스트)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진을 보는 모든 이들의 사고를 통제한다. 이정표를 제시한다. 보는 이들은 커다란 이정표를 통해 가는 길에 여러 아름다움을 마주한다. 사회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모든 피사체와 배경은 자취를 감춘다. 이런 특징은 역설을 만든다. 그것들이 내가 들춰내고자 하는 텍스트다. 여행은 아름답다. 목적에 부응하는 이미지를 수집하기 위해 셔터를 누른다. 쾌락을 전제한다. 카메라는 조력자다. 여행과 어울리는 키워드를 선별해 이미지로 남긴다. 그 이미지는 스크린 위에서, 우리의 기억에서 이것이 여행이라 확언한다. 관광객은 그들을 환영하는 관광지를 돌아다닌다. 사회가 용인한 즐거움이 가득하다. 여행 이미지에 방해되는 요소는 사회 시스템에 의해 일차적으로 걸러진다. 잔여물은 소비자의 외면을 통해 다시 한 번 여과된다. 사진엔 깔끔하게 필터링 된 장면이 남는다. 어긋난 피사체는 프레임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나쁜' 장면이기 때문이다. '좋은' 사진은 주제가 확실한 사진이다. 주제와 어긋난 피사체와 배경은 필요하지 않다. 나쁨을 걷어낸 사진은 '좋은' 사진으로 재탄생한다. 홀리데이 인 시드니는 좋음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배제했다. 잉여는 나의 의지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의도와 관계없이 아름다움을 접한다. 아름다움 밖에 진실이 있다. 보고 싶은 것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며 봐야 할 것을 0으로 수렴시킨다. 0은 어색하다. 0엔 사회가 숨기는 것이 담긴다. 여행이 신기루였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생긴다. 내게 정제된 세상은 거짓이다. 정제된 것만이 전부인 양 디스플레이 된다. 사진은 재현으로 정제된 상품을 포장한다. 보드리야르가 주장한 시뮬라크르의 매커니즘이다. 미디어와 SNS에서 공유되는 가상물이 현실을 집어삼켰다. 사람들은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 한다. 지속적 표상의 노출은 대중은 순응하는 수동적 존재로 탈바꿈시킨다. 디즈니랜드 효과는 어디에나 적용된다. 우리는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 속에서 또 다른 캐릭터가 된다. 시뮬라크르의 타파를 위해 보드리야르가 제시한 해답은 과잉 순응이다. 관광지 사진을 더 관광지처럼 선별, 편집한다. 시스템의 껍데기만을 복사하고 확대해서 거짓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홀리데이 인 시드니의 방법론이 이것이다. 관광지의 표상은 문화 안에서 실현된 타자의 공간이자 유토피아다. 유토피아는 그 어원처럼(그리스어 오우-없다, 토포스-장소), 어디에도 없는 공간이다. 호주 최대의 도시인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를 위시한 여러 관광지의 모습의 나열이 끝나면 현실의 작은 경계가 기다린다. 미처 소거되지 못한 이(디즈니랜드에 정착하지 못한 잉여의 상징)의 모습을 끝으로 홀리데이 인 시드니는 끝이 난다.